[단독]배고픔 피해 탈북했는데…굶어죽은 새터민 모자

2019-08-12 44



40대 여성이 어린 아들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.

10년 전 입국한 탈북여성이었는데, 타살 흔적도 자살 흔적도 없었습니다.

채널A 탐사보도팀은 굶주림을 피해 또 자유를 찾아 왔는데 어떻게 이런 비극을 맞게 됐는지 추적했습니다.

먼저 이은후 기자가 보도합니다.

[리포트]
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임대아파트, 방바닥이 쓰레기 봉투와 구더기들로 온통 어지럽혀져 있습니다.

지난달 31일 이 방에서 42살 탈북여성 한성옥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.

이미 사망한 지 두 달 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.  

[이웃주민]
"(처음엔) 거름냄샌지 알고 '시체가 썩어도 이렇게 냄새가 지독하진 않을 거다.' 창문을 열어보니까 저게 마네킹인가? 다시 보니까 시체더라는거야."

시신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.

여섯살 김모 군의 시신이 엄마와 2m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 발견됐습니다.

벽 곳곳에 그려진 김 군의 낙서와 장난감도 보입니다.

집 안에는 빈 간장통 외에 밥을 해먹은 흔적이 없습니다.

[엄시영 / 소각·정리업체 팀장)]
"냉장고 안에 물, 음료수, 요구르트 하나 없고 딱 고춧가루만 남았어요. 이렇게 100원짜리 동전 하나 없이 살다갈 수 있나. 마음이 아프더라고요."

경찰은 아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.

[경찰 관계자]
"자살 정황도 없고 타살 혐의점은 더욱 없고요. 생각해볼 수 있는게 그거(아사) 밖에 없으니까요."

한 씨는 지난 2009년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.

[이하나 / 하나원 동기]
"중국하고 북한 경계에서 장사를 하다 길이 있어서 넘어왔다고. 여성스러운 성격, 속을 안 내비치고."

정착 초기 한 씨는 삶에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.

하나원 교육 수료 후 운전면허증을 땄고, 수입이 늘어나 9개월만에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났습니다.

제빵, 요리학원 전문가 코스도 수료했습니다.

취재진은 한 씨가 한 때 중국동포와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렸던 경남 통영 집을 찾아갔습니다.

지역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한 씨 가족은 곧 중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.

[통영 마트 직원]
"조선소 많을 땐 중국사람들 많았거든. (지금은) 많이 사라졌어. 경기도 안 좋고 하니까."

이혼후 지난해 말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한 씨는 가난과 외로움의 벽에 부딪쳤습니다.

아들 나이가 5세를 넘어 아동수당마저 끊기자, 매달 정기 수입은 양육수당 1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.

인터넷과 휴대전화도 없이 사회와 단절됐고 집세도 1년 넘게 밀렸습니다.

한 씨가 마지막으로 손에 쥔 돈은 3,858원. 통장 잔액을 모두 인출한 건데, 이로부터 보름 뒤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.

[이하나 / 하나원 동기]
"애가 5살인데 어린이집도 안 가면 동사무소 복지과에서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? (한 씨가) 손 안 내민 것도 잘못이지만.
대한민국 서울에서 굶어 죽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."

채널A 뉴스 이은후입니다.

elephant@donga.com
영상취재 : 김남준
영상편집 : 윤순용 홍주형